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리야 니콜라예브나 여대공 (문단 편집) == 사망 == [[1918년]] [[7월 16일]] 밤 12시경, 유로프스키가 이파티예프 하우스의 문을 두드리고 지하실로 내려오라고 했다. 그들은 단순히 사진을 찍는 줄로만 알았으나, 지하실에서 유로프스키는 황제 일가에게 처형 사실을 통보한 후 [[볼셰비키]] 요원들과 함께 황제 일가에게 총을 난사했다.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황제와 그 가족은 마리야와 [[아나스타시야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아나스타샤]]를 제외하고 전원 즉사했다. 마리야는 허벅지에 총을 맞고 총검에 찔렸지만 그녀의 옷 안에 있던 보석들 덕분에 죽지 않았고, 결국 볼셰비키 요원은 마리야의 머리를 향해 총을 쐈다. 그러나 뒤늦게 발견된 그녀의 두개골에는 총상이 없었다고 한다.[* 아마 두피에 상처가 나서 기절했고, 이로 인해 죽은 것으로 오인했던 것 같다.] 그렇게 그녀를 포함한 일족 모두가 죽은 줄 알고 시신을 처리하던 중 기절해있던 마리야가 다시 깨어나서 소리를 지르자 그들은 그녀가 죽을 때까지 개머리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가격했다.[* 실제로 마리야의 두개골은 구타의 흔적으로 상당히 손상되어 있었다고 한다.] 총에 맞고 급사한 다른 가족과 달리 마리야는 죽은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고 한다.[* 죽은 원인을 밝히려면 시체를 부검해야 하는데 발견 당시에도 거의 100년이 지난 후였기에 부검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따라서 두개골에 총상의 흔적이 있지 않는 이상 어떻게 죽었는지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인은 '구타' 였을 확률이 높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만 19세였다. 다음날에는 마리야의 이모인 [[엘리자베트 알렉산드라 루이제 알릭스|엘리자베타 대공비]]도 살해되었다. 엘리자베타 대공비는 [[헤센의 알릭스|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의 둘째 언니로, 알렉산드라 황후보다 10년 먼저 [[러시아 제국]]에 시집와서 살고 있었다.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가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진 것도, 세르게이 대공[* [[니콜라이 2세]]의 작은아버지]과 엘리자베타의 결혼식에서였다. 세르게이 대공이 죽은 후 엘리자베타 대공비는 자신의 집을 [[수녀원]]으로 개조하였고, [[수녀]]가 되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자선과 봉사에 전념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의 와중에 다른 황족들과 함께 살해당하고 말았으니,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한편 여동생 [[아나스타시야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 공주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생존설이 돌았고, 남동생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로마노프]] 황태자 생존설도 있었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